십원빵 400개로 십원빵을 살 수 있나: 십원빵이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한국은행의 주장에 부쳐

by | Jul 19, 2023 | 논평/보도자료, 지적재산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십원빵 제조업체가 한은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십원 화폐 도안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자사의  “화폐도안 이용기준”을 근거로 업체들을 상대로 십원빵 판매 금지를 요구하고, 판매 지속을 위해서는 디자인을 변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저작권법의 입법 취지에 위배된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한은의 융통성 없는 결정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조속히 십원빵에 대한 저작권 침해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한은은 화폐 위/변조 행위와 위/변조 심리 조장을 우려하며 화폐도안의 사용에 간여해왔는데, 이와 같은 측면에서의 한은의 대응은 납득할 만하다. 문제는 한은이 저작권을 들어 위변조라고 볼 수 없는 화폐도안의 창조적 변형, 놀이적 변형 등과 같은 문화적인 이용에도 적용해 대중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지적한 대표적인 화폐도안의 “오용” 사례는 TV 광고 소재로 화폐도안을 사용하는 경우, 만원권을 컴퓨터로 스캐닝한 후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세종대왕 초상을 특정인물로 바꾸고 광고구호를 삽입하는 등의 광고 소재로 사용한 경우, 만원권 세종대왕의 얼굴을 웃는 모습으로 희화화하고 액면 숫자를 변경하는 것, 화폐가 무더기로 쌓인 이미지를 천에 인쇄하여 방석을 만든 것, 속옷에 지폐와 수표를 인쇄한 캐릭터 팬티 등이 있다. 

화폐유통체계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화폐 위/변조뿐만이 아니라 실물화폐와 엄연히 구별할 수 있는 화폐도안의 문화적인 이용과 변형에까지 한은이 개입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후견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 아무리 한은이 화폐도안을 저작권법상 미술저작물로 정식 등록했다고 하더라도 한은의 화폐도안 이용에 대한 개입은 저작권법의 입법 취지에 배치된다. 화폐도안의 문화적 이용의 가장 유명한 예로 앤디 워홀이 달러 지폐를 변형없이 이미지 그대로 실크스크린한 연작을 꼽을 수 있겠다. 주로 상업디자인 인쇄기법으로 사용되는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캠벨수프, 브릴로박스 등 당시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상품을 반복적으로 찍어낸 앤디 워홀의 연작은 자본주의를 강도높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어느 누구도 앤디 워홀의 달러 지폐 실크스크린 연작을 두고 저작권 침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Andy Warhol, 192 One Dollar Bills, 1962
이미지 출처: www.katarte.net

저작권법의 입법 목적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이다. 즉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권리 역시 보호하나 그와 동시에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공정한 이용”을 법률로 제정하면서까지 장려하는 이유는 타인의 저작물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정당한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문화와 예술은 이렇게 발전한다. 또 저작권법 제35조의5는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35조의 5 공정이용의 핵심은 원저작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새로운 저작물이 원저작물이 가지고 있는 실제 가치를 차용 또는 훼손하는가의 여부이다. 십원빵 제조업체는 10원 동전의 도안이 자아내는 것과 비슷한 감흥을 일으키려고, 또는 10원 동전을 대신하려고 십원빵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십원빵 400개로 4,000원짜리 십원빵을 살 수 없으니, 십원빵은 해당 조항으로 보호된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돈방석, 돈팬티와 같은 캐릭터상품, 광고 소재로 활용된 화폐 이미지 등도 저작권법상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 따른 결과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 저작권법의 제24조의2의 입법 취지 역시 이번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살릴 필요가 있다. 해당 조항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저작물은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익적 목적을 위해 공적 자원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저작물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의 취지인 것이다. 비록 한은은 국가 예산을 관장하는 기관으로서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특수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고 “한국은행법”이라는 별도의 법으로 규율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은이라는 기관과 화폐라는 재화의 공공적 성격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장려하는 저작권법의 정신을 존중해 화폐 위/변조의 직접적인 시도를 제외하고 화폐도안의 문화적 이용에 있어서는 화폐도안을 공공저작물과 유사하게 보아 국민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화폐도안의 이용을 금지하거나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표현 행위를 금지하거나 위축시켜 문화와 예술의 발전과 향상을 저해한다는 것을 한은이 부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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