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기밀누설죄와 국제인권

by | Feb 29, 2024 | 오픈블로그,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교수)

기밀정보 내용 누설의 해악성을
미루어 짐작하여 처벌하는 것은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 원리에 위배

자유민주국가에서 기밀정보를 합법적으로 수령하여 불특정다수에게 공간한(publish) 민간인에게 기밀누설죄를 적용한 사례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K 전 국회의원이 현역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통화 내용을 친구인 외교관으로부터 구두로 입수한 것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과 공유한 행위에 대해 기밀누설죄가 적용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자유형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자유민주주의 지역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누설된 정보의 내용이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한국방문을 먼저 요청했고 이미 예정된 일본방문에 즈음하여 방문하겠다는 답을 들었다’는, 일부 언론에서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정보의 누설이 국가안보나 외교에 해악을 주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1심과 2심 재판에서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신뢰에 직결된 사안’이라며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 내용 누설의 해악성과 무관하게 정상회담 대화내용이 유출되면 대한민국이 참여하는 정상회담에서 다른 정상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하기가 어려워져 외교에 장애가 된다는 취지가 행간에서 읽힌다. 그러나 내용 누설의 해악성을 이렇게 미루어 짐작하여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보호원리인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 원리에 위배된다.

미국에서 기밀누설죄를 실제로 민간인에게 적용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2004년경 소위 로젠(Rosen) 사건에서 이루어졌다. United States v. Rosen, 447 F. Supp. 2d 538 (E.D. Va. 2006). K 전 의원 사건과 비슷하게 피고인들이 사적 친분관계를 통해 ‘기밀처리되었으나(classified) 내용 자체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정보를 관련 공무원들로부터 구두로 전해들은 사례다. 이스라엘계 미국정치단체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의 직원인 피고인들은 국방부 장관실 직원이 유출한 기밀정보를 받아서 로비활동의 일환으로 기자들 및 정치단체 인사들에게 제공하였다. 로젠 등 피고인들은 해당 직원과 여러 번 식당에서 만났고 관계 지속을 위해 프로야구 경기를 같이 관람하기도 하였고 습득한 정보를 언론인 및 AIPAC의 다른 직원들에게 전달하였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민간인에게 기밀누설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피고인들이 정보의 제공이 국가안보를 실제로 위협할 것임을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초과주관적 요건을 부과하였다. 검찰은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공소를 취하하였다.

유명한 펜타곤 페이퍼스(Pentagon Papers) 사건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뉴욕타임즈 및 워싱턴포스트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공습 전략이 비효율적임을 밝힌 자료를 내부고발자로부터 누설받아 보도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New York Times Co. v. U.S., 403 U.S. 713, 714, 91 S.Ct. 2140, 2141, 29 L.Ed.2d 822 (1971)

물론 위 판례는 언론사의 출간 허용 여부를 사전에 판단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서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이 내려졌고 3명의 대법관은 출간 이후의 기밀누설죄 적용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출간이 된 후에도 미 연방검찰은 언론기밀누설죄로 기소를 하지 않았다.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정보의 누설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즉 최초 누설을 한 공무원에게는 누설 사실 자체가 ‘외교적 신뢰’를 훼손한다는 이유만으로 기밀누설죄가 적용될 수 있으나 그 공무원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은 제3자의 경우 누설된 ‘내용’이 국가안보 등의 국익을 침해한다는 입증이 있을 때만 기밀누설죄가 적용된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유럽인권재판소 Stoll v Switzerland, 69698/01 (2007) 판결에서는 유태인학살 피해자들이 스위스은행에 남긴 자산들의 처분에 대한 스위스 정부의 외교전략보고서가 유출되었고 이를 습득한 언론사는 전략보고서의 내용과 함께 보고서 저자인 스위스대사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했다. 스위스정부는 ‘정부내 비공개 심의(secret official deliberations)’를 공개한 죄(스위스형법 293조)로 기소하였고 800 스위스프랑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판결문의 대부분을 합법적으로 정보를 취득한 언론사가 면책되어야 한다는 점을 설시하는 데에 할애하였으나, 기사의 내용이 선정적이며 공격적인 점 및 벌금의 액수가 적은 점들을 고려하여 표현의 자유 침해가 아니라고 12대5로 판정하였다. 그러나 유럽인권재판소는 위의 전략보고서 공개가 ‘국가안보’나 ‘공공안전’을 해친다는 주장을 부인하였고 단지 ‘교신의 비밀(information received in confidence)’을 해한다는 주장만을 받아들였다. 또 유럽인권재판소가 유죄판결을 승인한 주된 이유는 수집행위나 공개행위가 아니라 기사의 선정성과 허위성이었다.

위 판시들에 영향을 받아 유럽에는 기밀누설죄의 적용에 있어 언론인 및 다른 공간자들을 정보누설을 한 공무원들과 명확히 구별하는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2012년에 법을 개정하여 언론인들은 기밀정보의 공개에 대한 방조 혐의로 기소되지 않도록 하였다(독일형법 353(b)(3a)).

위 글은 법률신문(2024.02.29.)에 게재되었습니다.

English version text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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