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5일 독일의 공영방송 ARD와 ZDF가 운영하는 전문편성 TV채널 Poenix의 웹사이트에 <인사이드 코리아 – 중국과 북한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 위기(INSIDE SÜDKOREA – STAATSKRISE IM SCHATTEN VON CHINA UND NORDKOREA)>라는 약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3월 6일 ARD와 ZDF에서 방송될 예정이라 한다.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는 이 다큐멘터리가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더욱 위태롭게 할 극도로 편향되고 왜곡된 방송이라 판단한다. 우리는 한국의 중요한 사태를 보도한 외국 언론사의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아왔지만 이토록 허위정보에 가까운 콘텐츠는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가 유럽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두 방송사에서 취재, 제작, 편성했다는 사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한 국가의 중요한 사태에 대한 외국 언론의 보도는 3자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보지 못한 문제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3자의 시선을 벗어나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극우 세력의 주장을 오래된 냉전 체제의 관점으로 확대하고 왜곡했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조차 저버렸다. 대립하는 두 주장이 있을 때 언론은 사실이 아니며 근거가 없는 한 쪽의 주장은 다른 쪽의 주장과 동등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국민 다수가 허위 사실이며 망상으로 판단하는 일부 극우 세력의 주장을 압도적인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국민 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자기 변명, 이를 그대로 반복하는 극우 지지자들의 발언, 이들 발언의 근거로 제시하는 신뢰도 낮은 전문가들의 인터뷰,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토대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풀리는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주요 취재원 또한 극우 인사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계엄령의 문제점을 지적한 취재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 다른 다섯 명의 취재원은 극단적인 대통령 지지자, 부정선거 음모론의 확산자, 실체도 없는 공산주의 카르텔을 주장하는 교수들이었다. 무엇보다 몇 개월 전까지 보수 정치인들조차 외면하고 종교계에서도 멀리했던 전광훈을 우익 포퓰리스트로 소개했다. 그의 발언과 행태는 우익이 아니라 파시스트에 가깝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이 냉전 시대에 가졌던 동아시아에 대한 선입견을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재 한국의 사태를 ‘중국-북한-극좌 야당의 은밀한 정치적 동맹’과 ‘미국-일본-여당’이라는 이분법적 냉전 구도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틀짓기는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을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이 한국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으로 시청자들을 보게 만든다. 이런 프레임은 중국-한국-북한 간 긴장관계를 왜곡하여 선거뿐 아니라 한국 입법부와 사법부의 정당성까지 의문에 부친다. 다큐멘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유럽의 시청자들은 한국을 일본 식민지 해방 직후의 부실한 민주주의 후진국으로 여기게 만들 것이다.
ARD와 ZDF는 이 다큐멘터리가 현재 한국의 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극우 세력의 폭력에 국제사회가 정당성을 부여할 선전 수단으로 쓰일 것이다. 이러한 효과로 독일 역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20세기 나치즘이 21세기 한국에서 부활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진뿐 아니라 두 공영방송사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1980년 ARD 특파원이었던 힌츠페터는 광주민주화 항쟁을 최초로 취재한 외신 기자였다. 그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 세계에 알렸던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ARD가 부정하고 있다. 2017년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국 시민들에게 에버트 인권상을 수여했다. 두 방송사는 그 때의 한국인들을 이 다큐멘터리로 모욕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말한다. 이토록 편향되고 왜곡된 다큐멘터리를 독일의 공영방송이 방송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보고 있다.
2025년 3월 6일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
공권력감시대응팀, 문화연대, 블랙리스트 이후, 사단법인 오픈넷,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인권센터,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한국장애포럼(가나다순)
*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은 언론,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한국의 16개 인권, 언론단체의 연대체입니다.
** 이 성명은 3월 6일 중 외신기자들에게 영문으로 배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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