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망사용료법, 약속과 과학의 부재

by | Mar 13, 2023 | 망중립성, 오픈블로그 | 0 comments

글 | 박경신 오픈넷 이사, 고려대 교수

여러 국내언론은 유럽에서 ‘망사용료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며 국내에서 진척이 되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조의 기사들을 써내고 있다.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지난 2월 말에 개최된 MWC, 즉 세계망사업자들의 박람회에 참가하였다.

유럽집행위원회의 위원 일부가 유럽 망에 트래픽을 많이 보내는 콘텐츠 제공자들이 유럽 망에 대한 투자를 하도록 해야 한다(소위 “fair share deal”)는 발언을 하고 이에 대한 의견수렴을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반대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 우선 유럽의 통신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는 명시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데이터통행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망설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증거가 없다며, 유럽집행위원회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작년 5월에 예비보고서의 형태로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이번에 필자가 만난 BEREC의장단도 마찬가지로 MWC를 방문한 한국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똑같은 입장을 전달하였다.

유럽집행위원회 발언에 대해 신중론을 펼쳤던 7개국(독일,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 정부는 MWC 개막일에 적극적인 반대입장문을 발표했고 역시 그 근거로 트래픽의 증대가 망설비 부담을 늘리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들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신스틸러가 되었다. 이후 MWC 행사기간 동안 망사업자들은 망설비 부담을 망사용료 징수의 근거로 힘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망투자 관련 토론회에서도 망사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윤 증대 필요성 외에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심지어 토론회에서 지지입장으로 나온 도이치텔레콤 측은 자신들의 이윤이 낮은 것은 물론 주가총액이 낮다고 주장하여 다른 패널로부터 국가가 왜 민간기업들의 주가와 이윤을 걱정해줘야 하냐고 핀잔을 들었다. 심지어 망사업자인 텔스트라의 CEO 비키 브래디는 망사업자들은 망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망을 생태계라고 보고 앱들의 운영자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필자는 유럽집행위원회의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간부들도 만나 왜 트래픽의 증대가 망설비 부담을 늘리지 않는가를 설명해주었다. 데이터가 매체를 지나갈 때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울에 빛이 반사될 때의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나중에 전해들었다. 즉 더 많은 빛(데이터)을 한꺼번에 반사하고 싶다면 더 큰 거울이 필요하고 이렇게 거울의 크기(인터넷 접속속도)를 키우기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 하지만 이 비용은 망사업자들이 그만큼 인터넷접속료를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충족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접속유지비용이 아닌 데이터전송료를 받게 되면 결국 인터넷에서 표현을 많이 하거나 많이 보는 사람은 돈을 더 내게 된다. 정보혁명이 위축된다.

대형플랫폼에만 돈을 받고 그 영향이 중소기업이나 이용자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하나 팔 때마다 망사업자에게 꼭 100원씩 망사용료를 내야 한다면 과연 삼성전자가 100원이 액수가 적다고 휴대전화 가격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인가?

인터넷이 정보혁명을 이끌게 된 이유는 약속과 과학이다. 소통은 소통당사자들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네트워크 참여자가 각자 자신의 주변 네트워크를 통제하려 하지 않겠다는 약속, 즉 망중립성 그리고 데이터가 전송되는 네트워크가 우선 구축되면 그 네트워크를 통해 아무리 많은 데이터가 지나가더라도 네트워크 유지비용은 크게 변함이 없다는 과학이다.

유럽이나 한국이나 정보혁명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 약속을 깨거나 과학에 어긋나는 안을 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이미 망사용료법이 부분적으로 (망사업자들 사이에서의 발신자종량제) 시행되어 그 정산부담이 콘텐츠 제공자들에게 전가되고 있어 결국 전 세계에서 발신자 쪽 인터넷접속료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는데 과거 어떤 대통령이 말했던 ‘대못’과 같은 규제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망사용료법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연혁적으로는 유럽집행위와 한국 정부이다.

정보혁명을 촉진하겠다고 한국은 “세계최초5G”, 유럽은 ‘집집마다1Gbps’라는 망건설목표를 정하고 망사업자들에게 채찍질을 해서 이윤율이 떨어지자 망사업자들은 데이터 발신자들에게 돈을 받자는 안을 짜냈던 것이다. 건물만 지어놓으면 도시와 문화가 발전할 거라는 미신, 너무 진부하다.

* 이 글은 경향신문(2023.03.13.)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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