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 드러낸 ‘배드파더스’ 명예훼손 유죄 판결, 국회의 조속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개정을 촉구한다

by | Jan 4, 2024 | 논평/보도자료, 소송, 소송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2024. 1. 4.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정보 등을 공개하는 사이트인 ‘배드파더스’ 운영에 관여한 구본창씨에 대하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죄의 유죄 판결(벌금 100만원 선고유예)을 확정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2도699 판결).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번 판결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을 드러내는 판결이자, 타인의 비위사실을 고발하는 모든 활동을 형사범죄화하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판결이라 평하며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이트 운영의 주된 목적이 ‘사적 압박을 통하여 양육비 지급을 신속하게 간접 강제하기 위한 것으로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는 점, 신상공개로 양육비 채무자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가 매우 크다는 점, 피해자들은 공적 인물이라거나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 등을 수인해야 하는 공직자와 같다고 보기 어렵고,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가 공적 관심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구씨의 활동이 공익적 목적보다는 비방의 목적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신상공개를 통해 양육비 지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기 위한다’는 목적은 현재 양육비이행법상의 양육비 미이행자 명단공개로 국가 역시 직접 ‘제도화’하여 추구하고 있는 ‘공익적’ 목적이다. 또한 양육비 지급 문제는 개인간 채권, 채무 문제를 넘어 공적 관심사안이 될 만큼 사회구성원 다수가 겪고 있는 공공의 사회 문제이며 아동의 생존권과도 결부된 공적 문제다. 한 개인을 넘어 ‘다수’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고, 다수 아동의 생존권을 확보해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면 이는 사익이나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아닌 공익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배드파더스는 3년 동안 900건에 가까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고,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2021년 신원공개, 운전면허정지, 출국금지 등 양육비 미이행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에 크게 일조하는 공익적 성과를 거뒀다.

한편,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는 배심원 7인 전원과 재판부가 모두 일치하여 구씨의 활동에 공익 목적을 인정하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비방의 목적’을 인정할 수 없어 무죄를 선고했다(2019고합425). 그럼에도 대법원은 이러한 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하고 공익적 목적을 좁게 해석하여 구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렇듯 배드파더스를 둘러싼 엇갈리는 판결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유무죄를 결정짓는 ‘공익 목적’이란 개념이 얼마나 판단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합헌 결정에서 ‘공익 목적’의 표현행위는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제한이 최소화되고 있음을 합헌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는데, 이 판결을 통해 ‘공익 목적’이라는 개념은 예측이 불가능한 불명확한 개념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위축효과를 방지할 수 없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을 상쇄시킬 수 없는 개념임이 드러난 것이다.

‘진실’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훼손될 수 있는 명예는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판, 즉, ‘허명’에 불과하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한 부모들의 허위의 명예나 과장된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말한 행위, 나아가 양육비 정책 개선 활동에 동력을 제공하고 여러 아동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하여 공익적 목적이 넉넉히 인정될 수 있는 활동마저 형사처벌 대상이라 판시한 본 판결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미투운동, 갑질폭로, 학폭폭로 등 힘없는 개인들이 자신의 피해사실, 진실을 밝히며 당사자와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사회의 각종 감시 및 고발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다. 

작년에도 유엔은 대한민국에 ‘명예훼손’ 자체에 대한 비범죄화를 권고했고, 특히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도 이미 권고한 바 있다. 본 판결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이 드러난 이상, 국회는 국제사회의 권고대로 현재 계류 중인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폐지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2024년 1월 4일

사단법인 오픈넷

English version text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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