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문화향유권 침해하는 루이비통의 상표권 소송과 전 세계 유일무이한 법원 판결

by | Jan 30, 2024 | 논평/보도자료, 지적재산권, 표현의 자유 | 1 comment

루이비통이 소비자들 요청으로 해진 루이비통 가방을 작은 가방이나 지갑으로 리폼해주는 영세수선업자들을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수백군데의 영세수선업자들을 압박하여 대부분 합의를 얻어내고, 마지막까지 합의를 거부한 수선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고 한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소비자가 자신의 소지품을 원하는 모양으로 변형해 자기표현에 이용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하며, 이 헌법적 가치에 따라 상표권의 보호범위도 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픈넷은 루이비통의 소송행위가 이 대원칙을 무시했으며, 1심 판결을 전 세계 유일의 오심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지적재산권의 남용으로 국민들의 문화생활을 피폐화하려는 시도에 적극 대응할 것이다. 

지적재산권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이에 준하는 활동을 할 때에만 작동한다. 자신이 산 책을 쪼개든 낙서를 하든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복사본이나 파생품을 만들 때에는 로열티를 내야 한다. 휴대폰을 중고로 판다고 해서 휴대폰에 들어간 부품의 특허권자들에게 다시 로열티를 줄 필요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계 최고의 영업비밀로 만들었다는 코카콜라도 내가 구입한 캔 안의 액체를 끓여마시든 원액제조법 탐구를 위해 분석해보든 영업비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청바지의 무릎이 해져 반바지로 만들어 입는 사람에게 청바지 제조사가 상표권 침해 주장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원리를 ‘소진원리’ 또는 ‘1차판매원칙’이라고 한다. 루이비통이 처음 가방을 팔 때 자신의 상표에 대한 가치를 포함한 물건값을 받으면서 그 가방에 대한 권리는 소진되어, 구매자가 어떻게 쓰든 팔든 고치든 중복해서 로열티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원리이다. 상표권 침해는 이 사건에서 견주어보자면, 루이비통 제품이 아닌 물건에 루이비통 상표를 새롭게 붙여 이 물건이 루이비통 제품인 것으로 혼동하도록 하여 판매를 한 경우에만 발생할 수 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가방 소유자가 아니라 수선행위를 대신 해준 수선업자에게 상표권 침해의 책임을 지웠다. 그러나 가방 소유자의 행위 자체가 합법인데 이를 대행했다고 해서 불법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수선을 통해 가방이 많이 변경되어 ‘새로운 생산활동’에 해당한다면서 소위 ‘1회용 카메라’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는데, 이번 사건과는 크게 다르다. 그 사건 피고는 후지 필름의 1회용 카메라가 이용되고 남은 본체 수십만개를 수집해 새로운 필름을 넣어 판매한 경우다. 이 사건 피고 수선업자는 물건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가방 소유자의 지시대로 타인의 물건을 변형해준 것뿐이다. 고객의 행위가 합법인데 이를 대신하면 불법이라니 받아들이기 어렵다. 

혹여 수선업자가 중고가방을 구입해 수선해서 판다 하더라도, 위 인용 판결을 적용할 수 없다. 위 인용 판결에서 1회용 카메라의 핵심가치는 필름이며, 필름을 모조품으로 교체하되 원상표를 남겨 파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루이비통 가방의 핵심가치인 가죽 원단을 그대로 이용하여 원상표를 남겨 파는 행위와는 명백히 다르다. 물건의 핵심 요소의 출처에 대한 혼동이 없다. 루이비통은 외국에서 루이비통 상표 부분만 잘라서 원제품과 재료 및 품목이 전혀 무관한 새로운 물건에 붙여 파는 업자들에 대해 단속을 벌였는데, 이번 사건과는 명백히 다르다. 

또는 수선비용의 대부분이 부품가격이고 이 부품들을 고객 몰래 모조품을 썼다면 ‘새로운 물건을 판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 수선업자의 수선가격의 대부분은 공임이며, 리폼에 이용된 부품도 모두 루이비통 순정품을 수리하면서 폐기처분된 부품들을 재활용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품 및 재료 출처에 대해 가방 소유자에게 사전 설명을 했기 때문에 혼동판매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가방 소유자가 리폼된 가방을 설명없이 재판매하겠다는 정황도 없어 혼동판매의  위험조차도  없는데 수선업자가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는가.

1심 재판부는, 가방 소유자는 혼동을 안 해도 수선의 결과물 즉, 리폼 제품을 보고 ‘일반소비자가 제품의 출처를 혼동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재판부는 소위 ‘판매후혼동(point-sale confusion) 이론’을 인용하려 한 것 같으나 이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위 이론은 ‘짝퉁’을 팔면서 구매자들에게 일일이 ‘짝퉁’이라고 고지했다고 한들, 상표권 침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첫 판매 후 전전양도를 거치다보면 고지가 전달이 제대로 안 된 혼동판매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는 애시당초 피고 수선업자가 판매 자체를 하지 않아서 추후 혼동판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 또는 가방 소유자와 공모하여 제3자에 대한 혼동판매를 방조하려 한 정황도 없다. 

판매와 무관하게 기존 제품의 다른 모습을 상상하고 구현해보는 문화생활은 애시당초 상표법의 보호범위가 아니다. 상표법은 기본적으로 재화나 용역의 제공 즉, 상행위에만 적용된다. 물건 출처의 혼동을 통해 이득을 얻는 행위를 막으려는 것이지, 물건의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1심 재판부의 말대로 소비자의 혼동이 문제라면 가방의 소유자가 수선업자의 도움없이 스스로 리폼을 하여 들고 다니는 행위도 똑같이 상표권 침해가 될 것이다. 또 영화나 예술품에서 루이비통 순정품을 변경하여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루이비통 제품을 만드는 것 역시 상표권 침해가 될 것이다. 앤디워홀의 <캠벨수프>처럼 명확히 상행위와 구분이 지어지는 작품활동은 상표권 적용이 되지 않는다. 피고 수선업자의 행위는 바로 가방 소유자의 자기표현 욕구 구현을 거들어준 순수한 공예행위일 뿐이다. 

소비자의 문화향유권, 나아가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을 표현할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판결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반드시 파기되어야 할 것이다. 루이비통도 소비자들이 고가에 구매한 제품을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향유하고 재활용하는 통로를 소송으로 차단해 신제품을 사거나 동일 제품을 다시 사도록 소비자들을 강압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2024년 1월 30일

사단법인 오픈넷

English summary available here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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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한현빈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Lenovo 휴대폰은 OEM 잠금 해재시 본사로부터 코드를 받아야 하며 그 이후로는 중고로 판매가 불가능하다고 약관에 명시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U2k9D81fbpA&t=301 ).
    이 약관이 법적 효력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를 적어둔 것 자체 또한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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