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빌미로 한 외국인 혐오 입법
평등권·표현의 자유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 즉각 철회하라
지난 2월 5일, 이준석 의원을 비롯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선거기간 동안 외국인의 정치 관련 댓글 작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플랫폼에 국적 확인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6616)을 발의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 법안을 명백한 위헌 입법이자, 혐오와 배제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위험한 시도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한다.
이 법안은 선거기간 중 외국인이 정치 기사나 논설에 의견을 게시하지 못하도록 플랫폼에 기술적·관리적 차단 의무를 부과한다. 이는 특정 집단을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적으로 침묵시키는 규제이며, 헌법 제11조의 평등권과 제21조의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침해한다. 국적을 기준으로 정치적 표현을 전면 차단하는 입법은 헌법상 엄격한 심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외국인 역시 대한민국의 법질서 아래에서 생활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그들이 기사에 댓글을 달고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선거권 행사와는 별개의 표현행위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외국인의 정치적 발화를 잠재적 위험으로 전제하고 집단 전체의 발언을 차단하는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국적을 이유로 한 집단적 배제이며,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차별적 규제다.
지방선거 선거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현행 법제 하에서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은 지방선거에서 선거권을 가진다. 이는 대한민국이 일정 범위에서 외국인을 지역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로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외국인에게 선거기간 동안 정치적 의견을 표명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에게 정책과 후보에 대한 의견 개진, 토론 참여, 비판과 지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 체계에 중대한 긴장을 초래한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투표권에 부수되는 권리가 아니라, 민주적 의사형성 전 과정에서 보장되어야 할 독자적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법안은 지방선거 선거권이 있는 외국인의 경우 댓글 작성을 차단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예외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플랫폼이 이용자의 국적뿐 아니라 지방선거 선거권 보유 여부까지 구분·확인하여 댓글 작성 가능 여부를 달리 적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극히 어렵고,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과 행정적 부담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선거권 보유 여부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검증하는 체계는 제도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오인 차단과 과잉 차단의 위험 또한 크다. 이러한 예외 규정은 실효성과 비례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선거권 보유 여부에 따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차등적으로 보장하는 접근 역시 헌법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선거권의 범위에 종속되는 권리가 아니라, 민주사회에서 보다 폭넓게 보호되어야 할 핵심적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사전적 차단 구조와 과잉금지원칙 위반
이 법안은 사전적·구조적 차단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이용자의 국적을 사전에 확인하도록 하고, 일정한 경우 표현을 게시 단계에서 차단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국가가 민간 플랫폼을 통로로 삼아 표현을 구조적으로 선별·통제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형식상 민간 사업자를 매개로 하고 있으나, 표현을 게시 이전 단계에서 차단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적 표현 통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위헌적 효과를 초래한다.
설령 선거의 공정성 확보라는 목적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외국인의 정치적 표현을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은 목적 달성에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고, 침해 최소성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다. 여론 조작 문제는 자동화 계정 규제, 허위정보 유포에 대한 사후적 제재, 투명성 강화 조치 등 덜 침해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특정 국적 집단 전체의 발언권을 박탈하는 것은 명백히 과도하며 비례성을 상실한 규제다.
익명성 침해와 사실상 실명제의 부활
국적 확인 의무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익명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법안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확인된 이용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하지만, 이는 선언적 문구에 그친다. 실제로는 선거기간 동안 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해 광범위한 이용자들이 국적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는 과거 위헌 결정이 내려진 인터넷 실명제와 유사한 위축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인증과 기록의 존재만으로도 시민은 발언을 자제하게 된다. 특히 정부 정책을 비판하려는 시민, 사회적 소수자, 내부 고발자 등은 더욱 큰 위축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실효성 없는 상징적 입법
이 법안은 실효성 측면에서도 중대한 의문을 안고 있다. 현대의 조직적 여론 개입은 국적이 아니라 자동화 계정, 자금력, 알고리즘의 악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VPN, 차명 계정, 우회 인증이 가능한 환경에서 국적 확인은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특정 국적 집단을 규제의 중심에 두는 접근은 실질적 문제 해결과 무관한 상징적 규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오픈넷은 최근 외국인의 정치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 제17조 제2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해당 조항은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외국인의 정치적 표현과 사회 참여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역시 선거 시기라는 이유로 외국인의 정치적 표현을 제도적으로 배제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외국인을 민주적 공론장에서 침묵시키는 방식으로는 어떠한 공정한 선거도, 건강한 민주주의도 보장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배제를 통해 강화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충돌하고, 시민이 그 과정에서 숙고하고 판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선거를 이유로 특정 집단의 발언권을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민주적 공론장의 개방성과 다원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국회는 선거를 빌미로 한 차별적·위헌적 규제를 즉각 철회하고, 실제로 문제되는 조직적 조작과 불법 행위에 한정한 정교하고 비례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배제를 통해 강화되지 않는다.
2026년 03월 05일
사단법인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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