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보호법 헌법소원 각하 결정에 대한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 성명] 산업기술보호법이 짓밟고 있는 알권리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

by | Jan 10, 2024 | 논평/보도자료, 소송, 소송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 부당하게 ‘기술유출’ 재판받는 개인 및 기업들을 위한 위헌소송 당사자 모집 –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는 2020년 3월,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 비공개), 제14조 제8호(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에 대한 목적 외 용도 사용/공개 금지), 제34조 10호(정보공개 청구 업무를 수행하며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된 자의 직무상 알게 된 비밀 누설/도용 금지)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해당 조항들이 헌법상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 등에 반하여, 국민의 알권리, 생명/건강권,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제9조의2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공개 사유와 절차가 마련되어 있음을 이유로, “기본권침해는 국가 기관 등의 정보 비공개 결정 등에 의해 비로소 발생하는 것일 뿐”(직접성 요건 결여)이라 했다. 제14조 제8호, 제34조 제10호에 대해서는 청구인들에게 “자기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어 부적법”하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판단에는 아쉬움이 크다. 헌법소원 요건인 ‘직접성’, ‘자기관련성’에 대한 형식논리에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제9조의2 제1항 단서와 제2항에 따른 예외적 공개는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없는 경우”에 한하여 “이해관계인의 의견” 청취,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및 관계 부처의 장의 동의”, “위원회 심의”를 거쳤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구색 맞추기에 불과할 뿐, 실질적 공개 절차를 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제9조의2 제1항 본문에 의해 직접적으로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 모두에 대한 비공개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제14조 제8호와 제34조 제10호는 각각 “산업기술 관련 소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적법한 경로를 통하여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보공개 청구, 산업기술 관련 소송 업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된 자”에게 적용되는 것인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분은 현행 대통령령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전제로 판단하였다. 대상 조항은 형사처벌의 구성요건을 하위법령에 위임하고 있어, 청구인들은 ‘명확성 원칙’과 ‘포괄위임금지 원칙’ 위반을 주장했다. 따라서 대통령령의 개정이나 관련 해석의 확장 여지까지 고려하여 ‘자기관련성’의 범위를 넓게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위 조항들은 여전히 유효하게 살아 있다. 모든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에 관한 모든 정보를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라는 무적의 비공개사유를 앞세워 은폐할 수 있다. 그 관련성 판단은 사실상 해당 정보를 은폐하고 싶은 사람들 측에 맡겨져 있다. 또한 적법하게 “산업기술이 포함된” 혹은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를 취득한 자가 그 정보를 토대로 어떤 공익적 활동에 나서려면, 여러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법이 관련 행동에 대해 무거운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정보수사기관의 사전적 강제조치까지 가능하도록 하면서 그 대상 범위를 너무 모호하게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제14조 제8호와 제34조 제10호의 적용 범위를 좁혀 판단한 것은 향후 해당 조항의 적용과 하위 법령 개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34조 제10호와 관련하여 “정보공개법상 정보를 공개하는 결정은 정보공개법 제9조 (비공개 대상 정보) 등을 검토하여 이루어지고 공개된 정보는 더 이상 비밀 정보로 보기 어려우므로, 위 ‘정보공개 업무’에는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정보를 열람하는 업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부분은 반가운 일이다. 10호 전단의 내용에 대해 이러한 유권해석이 존재하지 않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정보를 취득한 자에게조차 이 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위축효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산업기술보호법의 이러한 독소조항들은 제20대 국회가 만들어냈다. 관련 법안의 발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도했지만, 2019년 8월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통과는 민주당, 정의당을 포함한 다른 원내 정당들이 만장일치로 함께 이루어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대책위를 구성해 문제를 제기하자, 민주당, 정의당 의원들은 ‘그런 법인 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15명의 국회의원은 2020. 2.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 깊이 공감한다. 반성하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 올바르게 다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뿐인가. 제21대 국회는 2022년 2월, 이러한 독소조항들을 그대로 원용하면서 그 대상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는 새로운 법(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다. 국회는 문제를 바로 잡기는커녕 오히려 더 키우고 있다.

대책위는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의 이러한 문제를 계속 알리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위 독소조항들에 근거한 정보 비공개 결정이나 형사 기소가 이루어질 경우, 관련 재판에서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하거나 헌법재판소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제기하고자 한다. 산업기술보호법 혹은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근거한 정보 비공개(일부공개) 결정을 받았거나, 영업비밀성이 없는 기술정보를 이용하였음에도 두 법으로 인해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기업 혹은 개인의 제보를 기다린다.

아울러, 국회에도 계속 법 개정을 촉구하는 바이다. 헌법재판소가 제14조 제8호와 제34조 제10호의 시행령 조항에 근거하여 청구인들의 자기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법의 악용가능성을 시행령이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고 산업기술을 보호하려면 시행령이 한정한대로 법조항을 개정하면 될 일이다. 이미 그런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법안을 심의하는 회의 한 번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에만 20개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대부분 국가핵심기술과 산업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처벌을 강화하거나 적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공익적 활동을 제한하는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산업기술 보호에 충실한 법을 위해서라도 악법조항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건강을 위협하는 여러 문제들을 손쉽게 은폐할 수 있는 법이다. 이 법이 짓밟고 있는 알권리를 회복하여야 한다.

2024년 1월 10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

(참여단체 : 건강한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사단법인 오픈넷, 생명안전 시민넷, 일과건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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