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매개자책임제한원리와 게시물 복원신청권을 확립한 토대 위에서야 가능
정보가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삭제신청 되는 것도 문제
더불어민주당이 인터넷의 소위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인터넷 플랫폼에 책임을 지우는 법을 ‘한국식 DSA(Digital Services Act)’라고 명명하여 새롭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가 2016년 허위정보에 힘입어 당선된 것은 물론, 2021년 허위정보로 미국의회 공격을 선동한 것에 놀란 EU가 온라인 허위정보를 단속하기 위해 DSA를 도입함에 따라 우리도 ‘한국식 DSA’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DSA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고, DSA에 보장된 ‘정보매개자책임제한원리’라는 국제인권기준을 우리 법에 확립한 토대 위에 입법이 이루어질 것을 촉구한다.
DSA는 정보매개자책임제한원리의 ‘상대적 성공’을 계승, 발전하려는 시도다. 25년 전 EU와 미국 모두 인터넷을 통한 저작권 침해 등 불법정보 유통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고민이 있었다. 법으로 플랫폼에 불법물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여 단속을 강제할 것인가, 플랫폼이 단속하도록 동기 부여를 할 것인가? 법으로 강제하면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어 국가 검열의 위험이 노정되어 있고, 또 자신들도 모르는 불법물에 책임을 부과하면 플랫폼이 자기검열을 하게 되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떠받쳐온 공론의 장이 위축될 것이 고민되었다. 결국 미국, 유럽 모두 ‘강제’와 ‘동기 부여’ 중에서 후자를 택했다(Digital Millenium Copyright Act Section 512, Electronic Commerce Directive Articles 13-15). 즉, 플랫폼이 자신이 인지한 불법물만 차단을 하면 모든 이용자 게시물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는 소위 ‘정보매개자책임제한제도’를 선택했다(미국은 저작권 침해물 외의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인지하더라도 면책을 해주는, 더 급진적인 Communication Decency Act를 택했는데 오픈넷은 어차피 이를 권장하지 않으니 논외로 한다).
EU는 구체적으로 단속 절차를 규정하지 않은 반면, 미국은 단속 절차를 명시하여 저작권법(Digital Millenium Copyright Act, DMCA)의 노티스앤테이크다운(notice and takedown) 제도를 시행했다. 그 결과 미국은 지난 25년간 DMCA를 통해서 정부의 개입 없이도 매년 수천만건의 저작권 침해물 차단을 이뤄내며 헐리우드 등 저작권자들의 불만을 무마했다. 결국 ‘정보매개자 책임제한제도’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불법물 단속을 활성화하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으로 여겨지며 국제인권기준의 하나가 되었다. 2015년 오픈넷을 포함한 111개 국내외 단체들과 함께 정보매개자책임에 대한 마닐라 원칙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국제인권기구들도 국제인권기준으로 인정했다.
EU도 2022년 뒤늦게 저작권을 포함한 전 불법물 분야에서 정보매개자책임제한제도의 면책을 받기 위해 플랫폼이 수행해야 하는 단속 절차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DSA이다. DMCA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플랫폼이, 불법물 신고가 들어올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단을 하는 대신 게시자의 복원신청만 있으면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게시물을 복원하는 쌍방향 절차를 충실히 밟기만 하면, 모든 불법물에 대해 면책되도록 하니 플랫폼이 진심으로 열심히 대량 차단과 대량 복원을 수행했다. 합법물도 우선 차단은 되었지만, 곧 복원이 되었다. 이 절차에 따라 불법물도 다 복원이 되니 단속이 무산되었을까? 아니다. 대부분의 저작권 침해자들은 일단 차단이 이루어지면 감히 복원 신청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제 신고 게시물 중 5-10% 미만의 게시물에 대해서만 복원이 이루어졌다. 즉 저작권 침해 신고물의 경우 90-95%는 차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복원된 5-10% 중에도 반드시 잡아내야 하는 불법물이 있다면 법원을 통해서 구제하도록 하였다. 강제력이 있는 차단명령은 적법절차에 맞게 법원이 합법/불법을 가려낸 후에야 집행되도록 했으니 우리나라에서 정부편향적 심의로 비판받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기구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물론 일부 표현의 자유 활동가들은 합법적 게시물도 차단 및 복원절차를 거치게 되는 점 때문에 DMCA 마저도 억압적이라고 평가하고, 일부 보수파들은 법원 절차가 느리다고 했지만, 인터넷에서의 허위정보 및 가짜뉴스 단속은 엄청난 ‘규모의 혁명’을 요구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식 DSA’를 만들려고 한다면 우선 국제인권기준인 정보매개자책임제한원리가 확립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불법 게시물을 차단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명예훼손 등 불법물에 대해서는 면책조항이 없다. 우리나라 정보통신망법 44조의2에 책임감면의 가능성만을 언급하는 조항만 있을 뿐 면책을 얻기 위한 절차를 살펴보면 “(신고대상물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만 있고 게시자가 복원신청을 했을 때 복원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어 수많은 합법 게시물들이 1년에 수십만건씩 삭제 차단되고 있다. DSA에는 플랫폼이 자신이 모르는 불법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여러번 강조되어 있고 이용자 게시물에 플랫폼이 책임을 진다는 내용도 없는 것과 극명히 비교된다. ‘한국식 DSA’를 만들고자 하면 국제인권기준에 맞게 해야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번 법안은 불법정보뿐만 아니라 ‘허위조작정보’에까지 삭제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DSA는 불법정보에 대해서만 개입한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2010년 허위사실유포죄 위헌결정으로 ‘허위사실’이라는 정의는 불명확하다고 이미 판시한 바 있다. UN 인권기구들은 정보가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고, 우리는 박정희 유신 시절 ‘유언비어유포죄’가 어떻게 남용되었지만 보더라도 이와 같은 법의 위험함을 알 수 있다. 이번 법안의 주동자들은 아마도 부정선거론 같은 허위정보가 내란사태를 불러왔으니 그런 허위정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최근 인도네시아 사태를 보면 바로 허위조작에 대한 처벌법들이 내란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2025년 9월 22일
사단법인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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